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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병종결자

2011. 1. 12. 14:59 from 2
 




집에 와서 짐을
풀자마자 mp3부터 찾았다


그동안 도무지 음악을 들을 여건이 안되서 황폐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보냈다
유독 듣고 싶었던 가을방학을 재생하려는데 5집 앨범이 먼저 눈에 띄었다
그제서야 다시 생각났다

'파격적' 오프닝 곡 100년동안의 진심

라이브로 간절히 듣고 싶었던 태양없이
유재하의 그대 내품에
이능룡의 정직한 발음 유빌롱투미
순간을 믿어요
아름다운 것.....

그게 거의 2주전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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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전
12월 31일

이발관과 함께 2010년의 마지막과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맞으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옆사람은 사경을 헤매는지도 모른채...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맘아프다


1월 1일
전날 저녁부터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해서 미리 감기약을 먹었다
절대 감기로 고생할 수 없으니 초반에 잡자는 생각으로
그러나


1월 2일
이른 조치에 아랑곳없이 몸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1월 3일
드디어 오한,기침,콧물,고열이 발병해서 점심시간 이후 강제조퇴
동네내과에서 약을 지어먹고 쉬었으나 듣지 않고
되레 열이 40도까지 치솟아 응급실행 
독감진단을 받고 3시간 가량 해열제 링거를 맞고 퇴원 처방


1월 4일
여전히 사경을 헤매다가


1월 5일
용하기로 소문난 이비인후과 닥터고를 찾아가
역시나 독감진단을 받고 새로운 약으로 고열이 소강상태를 맞고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1월 6일
나아지고 있다 자기최면을 걸며 무리수를 던졌더니
얼굴이 중환자상이라며 또 다시 강제조퇴를 당하고 
내과에서 영양제 링거를 맞고 푹 잤더니
좀 나아지긴 커녕 
몸 상태는 최악을 향해 달려감

다시 고열이 40도 가량 치솟아 '또' 응급실행
3일전만 해도 엑스레이 촬영에서 이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폐렴진단을 받고 곧바로 입원




-
입원 1일
폐렴이 되려고 감기가 심했던건지 감기가 심해서 폐렴이 된건지
이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고민도 의미가 없었다
스마트폰 쓰고 있었으면 윤아무개처럼 병실셀카라도 찍어올렸을텐데 아쉽다

병실 배정 받고 환자복 갈아입고 야심한 시각 뒤숭숭한 마음으로 누워있는데 
중환자실에서 막 건너오신 옆 침대 할머니께
딱봐도 거성급인 슨생님 세분이 회진을 오셔서는
"하나씩 해결해봅시다 잘 싸워봅시다"라고 하는데 괜히 내가 다 뭉클했다
 

입원 2일
객혈하는 폐병환자는 얼핏 쌍팔년도 병약미소녀 이미지.
허나
지금은 무려 이천하고도 십일년일진데 지인들은 못 먹어서 그런거라며 결식아동 취급
아닌게 아니라 곡기란 곡기는 입에 대기도 싫어서 액상과당의 힘이라도 빌어보는 수밖에.

겨울에 바깥바람을 쐬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겨울에 바깥바람을 쐬도 되는 사람이 부럽다

지금의 나는 바깥바람을 쐬야하지만 바깥바람을 쐬면 안되는 사람

아마도 난 배틀로얄에 참가하면 가장 먼저 죽을거고 공포영화에 등장해도 제일 처음 사라질거고
전 인류에게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역시나 가장 먼저 죽을거다



입원 3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겠다, 이번 주말은 올겨울들어 가장 춥겠다,
다음주는 이번주보다 더 춥겠다...
참 발랄하고 경쾌하게도 얘기하는 기상캐스터들의 목소리
매번 일기예보를 들을때마다 두려움이 앞서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열이 24시간동안 나지 않아야 퇴원가능인데 24시간 내내 열이 나고 있다


입원 4일
무섭고 무거운 병은 참 종류도 많고 아픈 사람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그럼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 '불편'한 걸로 힘들어하는 내가 나약하기 짝이 없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입원 5일
정초부터 낀 액운이나 올해의 액땜이라기보다 
여러모로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적립되고 적립되고 적립되다가
겨울 한파라는 계기를 만나 표면으로 드러난 것일뿐


주사바늘 빼니까
살 것 같 다
사실 걸을때 같이 끌고다니는 링거만 없어도 살만하다 
아니 기침만 없어도
아니 열만 없어도

실로 오랜만에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서 잠시 찬 바람을 쏘였다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야밤 춥지도 않고 맑고 상쾌한 공기
아프지 말아야지 정말.


입원6일 퇴원일
주치의 선생님 말씀
"젊은 사람이 잘 안 걸리는 병인데"
"젊은 사람이 잘 안 걸리는 병인데"
"젊은 사람이 잘 안 걸리는 병인데"
....
예 저도 거의 20년만에 걸려본겁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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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동안의 진심 - 인생은 금물 - 나는
으로 이어지는 트랙을 듣는데 괜히 울컥했다

여기에 적을 수 없는 괴로웠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지금은 이렇게 그리던 집에 와서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듣고 있으니
아....다행이구나



내적외적, 정신적물질적 여하튼 전반적으로다가
심하게 없이 살았음을 느끼고 마음 다잡고 잘 살아봐야겠단 생각
그저 건강이 최우선이며 나도 내 사람들도 아프면 안되겠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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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조금 시들시들하다

하루빨리 생기를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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